단편 소설 아카이브 (19)

두번째 삶의 마굴에서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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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판으로 이뤄진 바닥이 갑작스럽게 무너져내렸다. 쇠몽둥이를 받아내던 검이 중심을 잃었다. 무사의 시야는 순식간에 어둠으로 가득 찼다. 시야가 어둠에 적응하기도 전에 이내 빛이 그의 눈을 덮쳤다. 그는 딛을 곳을 잃어 버둥거리는 와중에 눈을 찡그리며 몸을 틀었다. 그 허공을 차내며 몸을 뒤로 향했다. 추락하고 있는 동료들이 무사의 눈에 들어왔다. 주술사인 유영와 성직자인 도운은 휘몰아쳐 올라오는 기력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한 것 같았다. 피가 그녀들의 두 눈에서 쏟아져 나와 흩뿌려져 날아갔다. 백야와 여흥의 급박한 욕지거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무사는 가까이 있는 유영를 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

“허억!”

무사는 숨을 급하게 내뱉으며 일어났다. 수면 중에 숨을 쉬지 않았던 건지 그는 숨을 깔딱거리며 공기를 들이마셨다.

‘자면서 이런 일은 없었는데’

그는 악몽을 꿨다고 생각했다. 마굴의 아홉 번째 층까지 내려갔는데 갑작스러운 붕괴로 떨어지는 꿈. 기력 감압을 견디지 못하고 유영의 눈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떠올랐다. 그는 자뭇 생생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분명 마굴 깊이까지 내려갔었는데, 어떻게 돌아왔더라…? 어? 내가 자고 있었나?’

그는 손이 허전하다고 느꼈다. 숙소의 침대 모포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도운의 따듯한 온기도 없었다. 그는 얇은 면 옷만 입은 채 차가운 나무관 안에 앉아 있었다. 그는 그제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앉아 있는 관 옆으로 비슷한 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제 보니 옆으로만 있는 게 아니었다. 관은 방을 가득 채우며 도열하듯 놓여 있었다. 몇몇의 인영이 자신처럼 관 안에 앉아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가리 노단 아닌가?”

무사는 고개를 돌렸다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길, 길 소백장님, 어떻게…?”

무사 가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바락 길의 창백한 얼굴을 봤다. 가리는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관이 닫히는 그 순간까지도 가리는 길의 마지막 얼굴을 눈에 담고 있었다. 아버지 같은 분의 임종을 잊을 수는 없었다.

분명 관은 회당에 안치되었고, 회당이 관리하는 묘지로 가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길은 생전보다 생기 있는 얼굴로 만면에 미소를 띠고 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길은 의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죽을 줄은 몰랐는데.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되었나?”

“예?”

제가 죽어요?라는 뒷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리는 죽은 기억이 없었다. 물론 그는 죽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경험도 없었다. 길은 가리의 당혹스러운 얼굴은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도운이었나, 늘 붙어 다니던 실력 좋은 성직자가 있었잖는가. 그녀는 무사한가? 자네가 죽었으면 다른 이들도 몸이 성치 않았을 텐데.”

길은 표현 그대로 썩어도 준치라고 가리의 팀원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상황을 물었고, 그의 행동은 가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가리는 팀원들의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관을 붙잡고 일어났다. 애석하게도 그는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심장을 가로지르는 통증에 그는 가슴을 움켜쥐며 다시 주저앉았다.

가리는 익숙치 않은 통증에 겨우 숨을 몰아 뱉으며 입을 땠다.

“생각해보니… 제 일행의 상황을 전혀 모릅니다.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래, 그래야 할 거야.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거든.”

“아! 아직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특히나 오랜 시간 있다 오신 분들은요.”

붉은색과 흰색이 섞인 성직자 복을 입은 사제가 나타났다. 창백하지만 수려한 얼굴의 남자는 며칠이나 자지 못한 듯 수척해 보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가리의 몸을 이곳저곳 눌렀다. 그의 손에는 은은한 빛이 맺혀 있었고, 닿는 곳마다 따뜻함이 퍼졌다.

“아직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몸이 온전히 수복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아, 저는 사제인 더스틴입니다. 지침을 따라주십시오.”

더스틴은 길의 몸도 확인한 뒤, 잠시 기다리라 말하고 다른 관으로 향했다.

가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길에게 물었다.

“소백장님, 혹시 여기가 회당입니까?

“맞네. 여기가 소생문일세.”

“문이요? 저기 보이는 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을 둘러봤다. 그들처럼 깨어난 인원만 50명은 넘어 보였다.

“이보게, 가리.”

“네, 소백장님.”

길은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내가 죽기 전에 자네에게 물은 적이 있네. 다시 묻겠네.”

가리는 의아한 얼굴로 길을 바라봤다. 길의 눈에는 강렬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길이 무언가를 저지를 때는 꼭 저런 눈을 하고 단원들을 바라봤다.

“만약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면, 자네는 무엇을 위해 살 건가.”